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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루터 종교개혁의 시작카테고리 없음 2020. 8. 30. 23:14
마틴 루터 개혁의 시작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대학 궁정교회 정문에 붙인 95개조의 반박문이 붙여진 후, 개혁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반박문의 제목은 '면죄부 능력 천명에 대한 반박문'으로 당시 교황 레오 10세의 성 베드로 성당 건축비 충당 목적을 비판하는 내용이 담겨 있었고, 그에 대한 토론을 요구하는 반박문으로 시작되었다. 당시 면죄부는 천국행 티켓의 목적으로 판매되거나 값비싼 돈을 내면 지옥에 있는 조상 또한 천국으로 이동을 할 수 있다는 말로 사람들을 현혹했는데, 그것은 성경이 보편화되지 않은 시대에 성경을 읽지 못하는 사람들을 농락하며 거짓말하는 행위 이상이 될 수 없었다. 너무나 타락한 문화와 겉모습에 치중되었던 당시 카톨릭.
95개조의 반박문의 첫 번째는교황은 어떠한 죄도 사할 수 없다'라는 논제였다. 이 것은 그동안 잠재되어 있던 갈등을 노출시키기에 충분했고, 교황의 권위가 절대적일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이야기했다. 당시 교황은 카톨릭 내에서 가장 권력을 가지고 있었지만 신앙의 문제 앞에서는 리더십을 전혀 발휘하지 못했다. 평신도들의 신앙적 요구에는 따라주지 못하고 이단 선고나 자의적인 파문만 지도력을 인정받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논제는 신앙에 대한 판단 기준은 성서에만 있으며, 진정한 기독교인이면 누구나 모든 교회의 영역에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 당시 로마 카톨릭 교회에는 하나 둘 라틴어를 배워가는 사람들이 생겼고, 성경을 읽은 이들은 종교적 권위를 지켜줄 의무가 없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성서에는 사람 위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가 전혀 없는데, 성서 아래 있는 교황이 사람들을 부리고 하나님의 위치에 있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상황! 그 후 정치 권력가들이 학교와 대학을 설립하기 지각했고 인쇄술과 종이 가격이 인하되면서 수많은 평신도들 또한 성서를 접하며 읽게 되었다. 두번째 루터의 논제는 평신도들의 숨통을 열어준 역할을 한 것이다.
루터의 신학
루터의 신학은 처음부터 갖춰지고 체계적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루터의 신학은 기존 카톨릭과는 다른 특성이 드러나기 시작했고, 자신의 신앙고백이 담겨 있는 '기독교인의 자유' 나 '구속된 의지'는 루터의 신학을 고스란히 나타내고 있다.
루터는 인간의 노력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맺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일방적 은혜 안에서 인간을 살아가고, 그 은혜에 대한 약속을 붙잡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오직 그리스도에 의해 생긴 믿음이 해답이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믿음으로 연합된 크리스천들은 누구에게도 복속되지 않으며, 모두가 왕과 제사장이라는 주장을 한다. 또한 구약성경에 기록된 율법의 모든 것을 이행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신약에 오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 성령을 우리에게 주심과 그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이 되며 인간의 모든 죄가 사해졌다는 것을 이야기하는데, 오직 믿음을 통해서만 말씀이 실현되며, 오직 믿음으로만 그리스도와 연합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거듭 강조한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누구든지 다른 이를 위해 기도를 할 수 있고, 영적인 권면을 할 수 있다는 것도 부언하는데, 이 사상은 '이웃을 사랑하라'에서 비롯된 것이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이다.